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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와 조각을 품은 철공소 골목 … 노동과 예술이 하나 되다

작은 자투리 공간에서도 누군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일제시대의 낡은 건물과 어지러운 골목길, 철공소에서 흘러나오는 쇳소리와 흩날리는 분진들…. 이런 곳에 작품이 존재할까 싶었다.
하지만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골목길을 차례차례 훑어보니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벽화와 조각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오토바이 한 대 지날까 말까한 좁은 길 위에, 낡은 처마 밑에, 트럭이 주차된 벽면 위에, 가파른 낡은 층계와 옥상 위 텃밭을 가리지 않고, 돌담에 핀 작은 봄꽃처럼 소박하고 정겹게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노동과 예술이 공존하는,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얘기다.


문래 창작촌의 역사

낡고 삭막한 건물도 벽화가 있어 정겹게 느껴진다.


처음 문래 창작촌을 찾기로 마음먹은 건 이곳이 소위 말하는 ‘뜰’ 것 같은 동네여서다. 많은 사람이 신사동 가로수길과 삼청동, 이태원과 상수동 일대에 이어 성수동을 이을 장소로 문래동을 꼽는다. 모두 나름의 운치와 개성을 지닌 아기자기한 골목에서 출발해 번화해진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문래동은 여느 동네와는 다른 뭔가 특별한 기운이 있다. 낡고 오래된 폐공장을 개조한 예술가의 놀이터이자 작업 공간쯤으로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곳은 여전히 철공·기계·연마 등의 간판을 달고 쇠를 다루는 이들이 근무하는, 살아있는 노동의 현장이다.

‘못? 빼는 망치’라는 재치있는 제목의 조각 작품
문래동은 1930년대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사옥정(絲屋町)으로 불리다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바꾸면서 실을 잣는 기구인 ‘물레’의 발음을 따 문래동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이 중 문래동 1·2·3가에 모여 있는 철공소는 산업화 시대였던 70~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문래 소공인지원센터의 이호준 매니저는 “대개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들로 1300여 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고, 이 중 100여 개 정도의 공장이 문을 닫거나 이전하면서 그 빈자리에 예술인이 입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문화재단 산하 문래예술공장에 따르면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8년 전후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문래동으로 이주해 공장 2층이나 낡은 주택에 작업 공간을 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최근 1~2년 새 입주하는 예술가들이 늘면서 창작촌은 차가운 철공소의 쇠빛 골목에서 다채로운 벽화와 조각을 품은 골목으로 변화했다.

문래동 창작촌은 그러니까 노동과 예술이라는, 이질적이면서도 닮아있기도 한 두 직업의 사람들이 불편한 동거 내지는 공존해 오면서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철과 예술이 만나는 곳인 만큼 철로 만든 작품이 많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처음 문래동을 찾는 이들에게 창작촌은 그 속살을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2호선 문래역의 지근거리에 있고 주변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지만 창작촌 만큼은 70~80년대 풍경을 안고 낮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길과 골목을 파고들어야만 이곳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순례를 위해선 지도가 필수다. 문례예술공장을 방문해 문래 창작촌 지도를 구하면 놓치는 작품 없이 곳곳의 벽화와 조각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문래 창작촌의 맛

‘셰프스 마켓’의 외관
노동과 예술의 현장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밥집이다. 작가들이 모여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2相공간 두들’의 최라윤 공동대표는 "외지인이 아닌 문래동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따로 있다”며 ‘원미슈퍼’의 칼국수와 ‘서여사네’의 백반을 추천했다.

철공소에서 일하는 이들이나 예술가들의 얇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저렴한 가격에 든든한 한끼 식사와 술을 제공하는 곳이어서다.

생필품 이외에 술과 안주도 파는 ‘원미슈퍼’
원미슈퍼는 이름 그대로 각종 생필품과 통조림, 간식류를 파는 수퍼인데 두부김치와 제육볶음 같은 안주와 술도 판다. 주인 아주머니가 카드를 사용할 줄 몰라 현금만 받는다. 대신 외상도 흔쾌히 받아주는 곳이다.

소공인의 사랑방 ‘신흥상회
‘신흥상회’ 역시 인근에서 일하는 소공인의 사랑방이다. 작은 수퍼마켓인 이곳은 라면에 계란말이 안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으로 여름엔 2500원짜리 팥빙수가 별미로 꼽힌다.

‘쉼표말랑’ 제철 재료로 만드는 그때그때 밥상’
조금 더 세련된 맛집을 원한다면 ‘쉼표 말랑’과 ‘셰프스 마켓’을 추천한다. 쉼표 말랑은 ‘나무수레’라는 이름의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이경원 대표의 부인이 낸 가정식 식당이다. 천장을 시멘트로 막아 공장으로 쓰던 일제시대 건물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지붕의 목재를 그대로 노출시켜 독특한 운치를 자아낸다. 여기에 이 대표가 제작한 가구들을 곳곳에 배치에 가정집 같은 안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제철 재료에 따라 주일 단위로 바뀌는 음식 역시 정갈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셰프스 마켓’ 꽃등심 스테이크
셰프스 마켓은 드라이에이징 소고기와 수입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와이월드의 유병주 대표가 ‘그로서란트(식료품 가게 겸 음식점)’로 차린 가게다. 특급 호텔에 납품하는 드라이에이징 소고기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보통의 드라이에이징 소고기는 숙성이 많이 진행된 겉부분을 잘라내지만 이곳은 겉부분을 그대로 구워내 특유의 향을 살린 게 특징이다. 피자 6000원, 아메리카노 1000원 등 문래동만의 ‘착한’ 가격도 이 집의 매력이다.

남매가 운영하는 ‘문래돼지불백’과 인도음식 전문점 ‘마마’
이미 전국구 맛집으로 이름을 떨친 곳도 있다. 기사식당으로 잘 알려진 ‘문래돼지불백’이 대표적이다. 서홍석(72) 대표는 84년 신월동에 100평짜리 돼지불백집을 차려 ‘대박’을 쳤다. 그러나 이 자리가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부지로 팔리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서씨는 9년 동안 번 돈으로 26년간 국내외를 여행하며 놀았다. 그러다 2013년 중의사인 아들 서민원씨가 불백집을 다시 열겠다고 해 문래동에 새롭게 가게를 냈다. 불향 가득한 돼지불백 200g과 밑반찬을 곁들인 한 상이 6000원이다. 서 대표는 “고기가 최고등급이어야 한다. 다음이 양념, 그 다음이 굽기”라고 맛의 비결을 설명했다. 바로 옆집에는 ‘마마’라는 인도 음식점이 있는데 서 대표의 딸이 운영하는 곳이다.



순례를 마치고

고양이 ‘이포(검은색)’와 ‘광명’이 반겨주는 대안예술공간 ‘이포’
뜰 것 같은 동네라 찾았지만, 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골목의 흥망성쇠는 골목의 운명에 맡길 일. 다만 문래동 사용설명서를 전한다. 문래동은 앞서 말했듯 두 가지 직업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철공소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입장에선 일견 ‘베짱이’로 보일 수 있는 예술가들의 존재에 대해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예술가들과 10년 가까이 공생하면서 이런 감정은 적잖이 누그러진 듯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또 다른 불청객이 나타났으니 바로 관광객이다.

‘안테나’의 나태흠 대표
문래동 골목에선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 있는 촬영 문화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글귀를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올해 7년째 문래동에서 ‘나무수레’를 운영하고 있는 이경원 대표는 “이곳은 민속촌이 아니다”란 말로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현재도 왕성하게 경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노동의 공간이자 중요한 산업재인 쇠를 다루는 생산의 공간”이라며 “근대 유물을 보는 듯한 동정의 시선이나 작업하는 것을 신기해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은 이들의 자부심과 노동의 신성함을 해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테나의 나태흠 대표 역시 “노동자와 예술가의 직장이자 삶의 터전인 만큼 개방이 허락된 공간 외에는 불쑥 찾아가거나 내부의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문래동 여행자가 아닌 문래동 생활자가 돼 보는 것도 좋다. 문래동의 예술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예가온’에서

전병철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인 ‘쿤스트독’
심명섭 무술감독에게 무예를 배우거나 천부경을 강설한 김백호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고, ‘우쿨렐레 파크’에서 악기 연주를 배운다. 무술이나 우쿠렐레는 일반인들에게도 열려 있다. 갤러리 ‘두들’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연다. 카페 ‘생강’에선 5명의 작가들에게 바느질이나 꽃·욕제 소금 만들기 등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가죽 공방인 ‘골드테구’에서는 가죽 공예를 배울 수 있다. 문래동 사람들의 삶의 향취를 보다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글=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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