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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제대로 읽는 재팬] 죽을 때 “덴노 반자이” 외친 전우 못 봐 … 모두 “오카상” 불러

병사를 인간이 아닌 일개 무기로 여기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전후 평생을 반전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하라다 가나메. 그는 전투기 모형을 들어 보이며 전쟁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나가노=김현기 특파원]

1941년 항모 위에서 촬영한 조종복 차림의 하라다(위)와 가스미가우라 조종학교 졸업 당시의 모습.
전후 70년간 일본은 평화국가였다. 단 한 명의 군인도 사망하지 않았고,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지구 규모’로 전쟁·분쟁에 뛰어들려 한다.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려 한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은 이를 ‘보통 국가’라 부른다.

 이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아베의 방미 기간 중 누구보다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이가 있었다. ‘최후의 제로센 파이터’ 하라다 가나메(原田要·99). 그는 전쟁 영웅이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자랑한 고성능 전투기 ‘제로센’을 타고 진주만 공습 작전에 참여한 이래 종전까지 3년9개월 동안 전장을 누볐다. 이 기간 중 비행시간만 8000시간. 일본이 자랑한 항공모함 ‘소류(蒼龍)’에 배속된 전투기 소대장이었다. 19기의 적기를 격추하며 ‘에이스 조종사’란 칭호도 얻었다. 당시 제로센을 몰았던 조종사 중 현재 생존한 이는 그가 유일하다.

 일본의 마지막 전쟁 영웅이 보는 2015년의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 아베의 미국 의회 연설이 끝난 지난달 30일 그를 찾았다.



 하라다는 도쿄에서 약 300㎞ 떨어진 나가노(長野)현 나가노시의 산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1916년 8월 11일생. 우리 나이론 100살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한번 말문이 트이자 2시간 반 동안 자신의 전쟁경험과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하라다는 제로센의 세세한 성능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제로센의 기수에 있는 7.7㎜ 기관총은 위력이 떨어지지만 양 날개에 하나씩 달린 20㎜ 기관총은 최강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탄창이 작다 보니 한쪽당 60발밖에 못 쏴요. 그러니 시속 600㎞ 이상으로 날아가면서 적기에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선 무조건 바짝 쫓아가 근접사격으로 명중을 시켜야 했죠. 두 전투기 사이는 정말 5~10m까지 붙었지. 근데 그러다 보니 매번 적기를 격추하기 직전 적기 조종사와 눈이 마주치는 거예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비통한 표정이죠. ‘제발 그만해줘…’ ‘살려줘’라고 애원하던 눈동자를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방을 날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요. 적기 조종석은 불덩이가 됩니다. 추락하면서 적기 조종사는 날 다시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게 전쟁입니다.”

 하라다는 종전 후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거의 매일 자신에 의해 격추된 적기 조종사의 일그러진 얼굴이 꿈에 나타났다.

 “자다 ‘으악! 오~오~’ 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죠. 그러면 늘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70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그래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니 당연한 업보죠….”

 “42년 4월 5일입니다. 영국령인 실론(현 스리랑카) 기지 공습에 나서 오전에만 5기를 격추시켰어요. 그런데 욕심을 부리다 항모에 귀항하는 시간을 놓쳤습니다. 연료가 점점 떨어져가자 자폭을 생각했죠. 그 순간 수평선에 띄엄띄엄 있는 구름 중 하나가 어머니 얼굴 윤곽으로 보이는 거예요. 나중에는 그 어머니 구름이 나보고 이리로 오라 손짓하는 듯 보이더군요. 인간은 원래 약해지면 어머니가 생각난다더니 맞더군요. 누구는 전쟁 중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 하는데 난 그런 전우는 단 한 명도 보질 못했어요. 모두가 마지막 순간 ‘오카상(어머니)’을 외치더군요. 그런 전쟁을 또 하려 합니까.”

 하라다는 죽음의 문턱에서 전쟁의 죄악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42년 6월 5일 미드웨이해전에서 일본군 항모 4기가 전멸당한 뒤 하라다는 내릴 곳이 없어 바다에 착륙했다. 바다 위에 떠 있던 일본 병사들이 하나둘씩 힘에 부치면서 바다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일부는 권총으로 자결했다. 바다에 떨어진 지 4시간. 지옥이었다. 나중에 일본 구축함에 의해 구조된 뒤 군의관에게 “나보다 큰 부상을 입은 동료를 먼저 봐주세요”라고 했다. 돌아온 말에 전율을 느꼈다. “이봐. 여긴 전쟁터야. 경상자가 우선이다. 중상자는 제일 마지막이고. 우린 인간이 아니야. 무기의 일부야.”

 하라다는 종전 후 전국을 다니며 청소년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했다. 조금이라도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99세가 된 올 초에도 강단에 섰다.

 그런 그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이번 아베 총리 방미 때 결정한 ‘신가이드라인’에 의해 일본이 다시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된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일본은 전쟁에 패하고 평화를 얻었어요. 엄청난 교훈이죠. 그런데 앞으로 20㎜ 기관포를 만들면 상대방은 30㎜를 만들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일본이 불안합니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전후에 태어난 현 지도자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난 전쟁을 증오합니다.”

 마지막 전쟁 영웅의 외침을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김현기 도쿄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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