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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알맹이 빼고 가십만 남기는 '페북·트위터 깔때기'

# 지난해 6월 서울교육감 선거에는 자립형사립고와 혁신학교의 존폐, 무상급식 확산 여부 등 굵직한 이슈가 있었다. 그러나 후보 간 폭로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덮은 뒤 남은 것은 눈을 질끈 감고 오른손을 위로 뻗은 고승덕 후보의 사진 한 장과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이는 KBS ‘개그콘서트’ 소재로 쓰인다.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달 1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것도 SNS가 발단이었다. 한 기자가 트위터에서 고승덕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을 갖고 계시지요?”라고 한 것을 보고 의혹을 여러 번 제기했다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됐다.

 # 지난 1월 초 페이스북에서는 ‘구급차 과태료’ 논란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구급차에 양보하다가 신호위반 과태료를 물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온라인 매체 인사이트와 위키트리가 인용해 기사화했고, 페이스북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둘 다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기사를 알리는 매체다. 글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에서 글쓴이의 교통법규 위반 기록과 단속카메라 영상까지 확인했지만 그런 사실은 없었다. 글쓴이는 경찰의 확인 전화를 받고도 해명 없이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매체의 기사는 여전히 SNS에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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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안에도 갖고 들어가는 모바일 기기로 친구들이 골라 보내주는 소식을 받아보는 SNS가 하나의 매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 세계 페이스북 월간 사용자는 14억4000만 명, 트위터는 3억2000만 명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은 하루 평균 1시간7분 SNS를 이용한다. 그런데 SNS가 뉴스를 왜곡하는 ‘깔때기’나 정치 냉소주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2012년 8월 영국 런던에서 세계 스포츠의 새 역사가 탄생했다. 흑인 여성이 처음으로 올림픽 체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7세 흑인 소녀 가브리엘 더글러스는 미국 체조 국가대표로 단체전과 개인전 금메달을 따 2관왕이 됐다. 검은 요정 개비(가브리엘의 애칭)는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개비 헤어 스타일 논쟁’이 인터넷에서 일었다. 개비는 머리카락을 빗어 넘겨 뒤로 묶고 잔머리는 머리핀으로 고정한 채 올림픽 무대에 섰는데, 이게 ‘흑인답지 않았다’는 것이다. 논쟁이 격화되자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에서도 기사로 다뤘다.

 개비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나는 역사를 새로 썼는데 사람들은 왜 내 머리 얘길 하죠?”

 엉뚱한 게 이슈가 된 이유는 ‘트위터 깔때기’ 때문이다. SNS를 거치며 의미는 실종되고 가십만 남은 것이다. 지난달 17~18일 미국 오스틴의 텍사스 주립대에서 열린 국제 온라인저널리즘 세미나(ISOJ)에서 이 과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다. 캐슬린 매클로이 미 오클라호마 주립대 교수의 ‘금메달, 블랙 트위터, 안 좋은 머리 모양 : 개비 더글러스 논쟁 만들기’에 전 세계 주요 언론사 기자와 언론학자들이 주목했고, 올해 ISOJ 최고 논문상을 받았다.

 매클로이 교수는 당시의 언론 보도와 인터넷 커뮤니티, 블로그, SNS 등을 조사해 개비 논쟁의 발생과 확산 과정을 파헤쳤다. 분석 결과 미국을 휘저은 그 모든 논쟁은 한두 명이 남긴 트윗 두세 건에서 시작됐다. 트위터를 쓴 사람은 유명인이거나 공인이기는커녕 신원조차 불분명하다. 실명인지 아닌지도 모르며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작은 의견이 ‘여론’ 둔갑=개비 논쟁에서 ‘트위터 깔때기’는 이렇게 작동했다. 개비의 금메달 획득 직후 한 흑인 여성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썼다. “많은 흑인 여성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개비 더글러스의 머리 모양을 비난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 여성은 트윗 몇 개를 캡처한 사진도 붙여 넣었다. “젤을 많이 발랐네” “누가 머리 다듬을 시간 좀 줬으면” 같은 내용이었고, 프로필 사진은 흑인 여성의 얼굴이었다.

 실제로 그 트윗을 쓴 사람이 흑인 여성인지, 몇 명의 흑인 여성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글은 여성 전문 매체로 재인용됐고, 허핑턴포스트에도 “많은 흑인 여성들이 개비의 헤어 스타일을 비난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런 내용의 실제 트윗은 여전히 3~4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허핑턴포스트의 글은 페이스북 ‘좋아요’를 3만 개 이상 받으며 퍼졌다.

 SNS는 이제 ‘개비의 머리 모양을 비난하는 흑인 여성들에 대한 비난’으로 뒤덮였다. ‘머리 모양만 신경 쓰고 앉아 있다’ ‘그러니까 뚱뚱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매클로이 교수는 “올림픽의 새 역사는 트위터를 거치며 머리 모양 논쟁으로 변질됐다”며 “뉴스의 왜곡”이라고 말했다. 미국 흑인들은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블랙 트위터’(#Black_twitter)를 자주 붙인다. 하지만 매클로이 교수는 “블랙 트위터를 실제 흑인들의 이야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차라리 길거리 익명의 행인 말을 인용하지 그러냐”고 했다. 트위터를 ‘여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 토론, 권투 경기같이 돼=미국 세튼 홀 대학의 카일 하임 교수는 2012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경선 후보들의 TV토론을 다룬 트윗을 분석한 논문을 올해 ISOJ에서 발표했다. 그는 “트위터 의존은 정치 냉소주의를 부른다”고 경고했다.

 하임 교수는 후보들의 TV토론 시간에 발생한 관련 트윗 3032건을 수집해 핵심 문구를 분석했다. 토론 발언록 전문과 뉴스 보도의 핵심 단어도 뽑아내 이것과 비교했다. 발언록 핵심어는 ‘국가와 국민’ ‘일자리’였고 언론 보도에서는 ‘아이오와 토론’과 ‘건강 보험’이 주요 문구였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딴판이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문구는 ‘1만 달러’였다. 밋 롬니 후보는 토론 중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며 “나랑 1만 달러 내기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내용은 토론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트위터는 ‘1만 달러 내기’로 뒤덮였다. 2억 달러 자산가인 롬니가 ‘1만 달러’를 쉽게 얘기한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이날 토론 속기록과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한 ‘팔레스타인’ ‘오바마’ ‘세금’ 같은 단어는 트위터에서는 관심 밖이었다.

 하임 교수는 트위터가 신문이나 통신 기사에 비해 본질을 다루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정치 토론을 복싱 매치같이 다뤄 정책 논의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정치 영역에 있어서는 트위터가 언론 보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트위터는 유권자들이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잘 보여주므로 정치인들이 참고할 수 있다”고 했다.

오스틴=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S BOX] “페이스북·구글은 언론의 친구 아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착취한다.”

 로버트 피카드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난달 18일 ISOJ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 경제학 분야 석학인 그는 “구글과 페이스북은 우리(언론)의 친구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뉴스를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보는 독자들이 늘면서 언론사 고유의 편집·형식 차별성이 사라지고 페이스북이 언론을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다. 복제와 도용이 쉬운 온라인의 특성상 기사 저작권자에게 올바른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지난달 17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미국 오스틴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들과 한국 기자단이 가진 간담회에서도 이 주제가 다뤄졌다. 러스티 토디 교수는 페이스북과 언론의 관계를 ‘프레너미(frenemy)’로 규정했다. 프레너미란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한 말로, 적이면서 친구인 관계를 가리킨다. 토디 교수는 “한편으로 친구 관계지만 분명한 것은 페이스북이 돈을 번다”고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20.7%가 SNS를 통해 뉴스를 봤다. 20대에서는 그 비율이 40.2%에 달한다. 강석 텍사스주립대(UTSA)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은 자신들만의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들고 있다”며 “모든 것을 페이스북 안에서만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최근 페이스북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사들에 페이스북에 뉴스 웹페이지 링크를 올리는 대신 담벼락에 직접 콘텐트를 올리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편집장 출신 R B 브레너 학장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운명을 페이스북에 맡긴다면 페이스북에 유리한 대로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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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