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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네 덕에 세상이 동화로 변했덕" … 나흘 새 20만 명 행복 충전

14일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나타난 러버덕. [뉴스1]

“석촌호수에 온 지도 나흘이 됐덕. 호숫가에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붐비는 데도 다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덕. 나, 러버덕의 인기가 어디 가겠어? 첫날 먼 길 오느라 피곤해서 바람 좀 빼고 졸았더니, 사람들이 비타민이며 타우린 같은 걸 챙겨준다고 더 많이 왔더라덕. 밤엔 다시 쌩쌩해졌덕. 내가 ‘낮져밤이’ 타입이거든. 꽥꽥.”

 태어난 지 7년 만에 전 세계 25개 도시를 돌아 석촌호수에 발을 담근 러버덕은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과 앙 다문 입, 아니 부리. 16.5m의 키는 공룡보다 크지만 모든 지구인을 매료시킨 절대 귀여움. 러버덕 앞에선 얼마든지 유치해져도 좋을 거 같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지난 15일 석촌호수에서 만난 오설(36)씨도 “거대 오리가 동심을 강타했다”고 했다. 러버덕을 찾은 사람은 17일까지 20만 명에 육박했다.

 러버덕은 네덜란드 공공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에 의해 2007년 태어났다. 암스테르담에 처음 설치된 후 16개국 26개 도시를 여행했다. 지난해 5월 홍콩 침사추이에선 한 장소에서 800만 명을 모았고, 중국 베이징 이화원은 러버덕으로 2억 위안(약 350억원)의 입장료 수입을 올렸다. 호프만은 예상치 못한 오리의 인기에 “러버덕이 전 세계 긴장을 해소하고 아픔을 치유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러버덕을 두려워하고 꺼린 이들도 있었다. 지난해 6월 4일(천안문 사건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5억5000만 명이 사용하는 SNS 웨이보에서 네 개의 단어를 검색하는 걸 금지시켰다. ‘오늘’ ‘오늘 밤’ ‘6월 4일’ ‘큰 노란 오리(大黃鴨)’.

러버덕에 열광한 네티즌들이 올린 패러디물. ① 천안문 사건 당시 거리를 점령한 탱크 네 대를 러버덕으로 합성. ② 러버덕에게 힘을 내라며 레드불을 건네는 시민. ③ 힘 빠진 러버덕을 걱정하듯 바라보는 진짜 오리.

 러버덕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수많은 패러디가 이어졌고, 천안문 사건도 그 대상이 됐다. ‘탱크 앞에 선 청년’, 천안문을 상징하는 한 장의 사진. 한 미국인이 탱크 넉 대가 있는 자리에 러버덕 네 마리를 합성해 인터넷에 올렸다. 평화와 자유를 해학적으로 보여준 패러디는 삽시간에 웨이보를 통해 퍼져나갔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런 금지조치는 “노란 오리 탄압은 정부의 비인간성과 두려움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러버덕이 인기를 끌자 우한(武漢)·시안(西安) 등에서 잇따라 ‘짝퉁 러버덕’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에 러버덕 아빠 호프만은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대만의 지릉시와 가오슝시는 누가 더 빨리 러버덕을 유치할지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승자는 가오슝시. 3개월 빨리 러버덕을 데려왔다. 그러자 지릉 시민들이 시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이에 지릉시는 러버덕을 영구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작가와 계약을 했다.

 인기가 많으면 시기도 많은 법, 오리에게는 사고와 테러가 멈추지 않았다. 2009년 벨기에 하셀트에서 러버덕이 밤새 칼로 42차례 찔린 채 발견된 사건은 지역사회에 충격을 줬다. 또다시 흉악한 범인에게 난도질 당하지 않도록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러버덕 주위에 보초를 서기까지 했다.

 지난해 12월 대만 지릉, 사람들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던 도중 러버덕은 내부 압력으로 얼굴이 찢어지며 폭발했다. 앞서 대만 타오위안시에서도 러버덕의 엉덩이가 폭발해 노른자처럼 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진으로 러버덕의 바람이 빠지자 멀리서 오리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재촉해 급히 바람을 넣다 생긴 사고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 대해 호프만은 이렇게 말했다. “러버덕이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 준다.”

 러버덕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1992년 홍콩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던 화물선 ‘에버로렐’이 폭풍우를 만났다. 컨테이너 몇 개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거기에 실려 있던 ‘욕실용 노란 고무 오리 장난감 2만8800개’가 쏟아져 나왔다. 고무 오리는 무려 20년간 해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알래스카와 아메리카 대륙뿐 아니라 인도네시아·호주 해변에 도착했다. 그렇게 등장한 장난감 오리는 곳곳에서 화제가 됐다. 러버덕은 여기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작가는 긍정도 부정도 안 한다). 성균관대 이종관 교수는 “갑자기 나타난 러버덕은 잊고 있던 동심을 몇 백 배 증폭시키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장난감이 어른이 된 내 앞에 수백 배 커져 나타났고, 난 이 친구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구혜진 기자 koo@joongang.co.kr
이은정(단국대 중어중문) 인턴기자

[S BOX] 석 달간 PVC 200조각 이어 붙여 만들어


러버덕의 석촌호수행이 결정된 것은 지난해 8월. 홍콩에 출장 간 롯데 직원들이 러버덕을 보고 동시에 ‘석촌호수’를 떠올렸다. 즉각 러버덕의 작가 호프만에게 연락했다. 호프만은 각 나라의 환경에 맞는 도면을 제공하고 제작은 현지인들에게 맡긴다. 한국 재봉사들이 석 달에 걸쳐 PVC(합성수지) 200조각을 재단하고 이어 붙여 ‘한국 러버덕’을 만들었다.

 D데이인 14일. 오전 1시부터 시작한 공기 주입은 예상시간보다 3시간 더 걸렸다. 러버덕 프로젝트에 참가한 롯데백화점 구혜진 큐레이터는 “시민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오리를 보고 즐거워하게 만드는 게 작가의 의도”라며 “아침 출근시간까지 완성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했지만 간신히 시간을 맞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바람이 빠져 러버덕의 머리가 석촌호수 수면으로 묻히고 말았다. 다들 안절부절 못했지만 웬걸, 사람들은 러버덕에 더 환호했다. SNS에는 러버덕을 치료하겠다, 찾아가 위로하겠다는 글 수십만 개가 올라왔다.

 서울 4곳에 문을 연 팝업스토어에서 파는 미니 러버덕 인형 6000개(일반 3000개, 한정 3000개)는 3일 만에 완판됐다. 작가의 원칙에 따라 판매 금액은 100% 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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