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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왕따 있을까? …'포도송이'가 알려주네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는 지난해 6월 특이한 조사를 했다. 전교생에게 짝꿍을 하고 싶은 친구가 누구인지, 시험이 끝나면 함께 놀러가고 싶은 친구가 누구인지 등을 물은 것이다. 이 조사에서 당시 2학년이던 김모(17)양은 성격이 밝아 인기가 많았던 같은 반 최모(17)양을 선택했다. 하지만 최양은 물론이고 어떤 학생도 김양을 어울리고 싶은 친구로 꼽지 않았다. 김양이 외톨이로 나온 것이다.

 박모(58) 담임교사는 최양을 불러 “너를 특별하게 여기는 친구가 있으니 얘기를 잘 들어주라”며 김양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한 달 후 김양은 “몸이 좋지 않다”며 조퇴했는데, 박 교사가 집에 도착 후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박 교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박 교사가 최양에게 도움을 청했고, 김양은 대화 상대가 돼줬던 최양의 전화는 받았다.

휴대전화에선 “역시 너밖에 없네. 나 힘들어. 어지럽다…”는 김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 교사와 최양이 급히 집으로 찾아갔더니 김양은 우울증 약을 많이 먹고 혼자 쓰러져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김양은 위기를 넘겼다. 박 교사는 “우울증 증세가 있는 김양이 학교에서 외톨이였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가 실시한 조사는 ‘교우 관계망 분석 프로그램’이다. 반장으로 뽑고 싶은 친구가 누구인지, 휴대전화 메신저를 자주 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같은 10여 개 설문으로 ‘왕따’ 위험이 있는 학생을 가려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사회연계망 분석(SNA)업체 사이람이 지난해 6월 개발했는데,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장덕진(사회학) 교수가 자문을 했다. 학생들이 질문에 해당하는 친구의 이름을 적어 e메일로 보내면 사이람 측이 학생들 간 관계도를 포도송이 같은 형태로 그려 학교 측에 제공한다. 학생들은 다른 학급 학생도 적어낼 수 있다.

 올 2월까지 전국 6개 초·중·고생 1718명이 참여했는데, 10.8%가 누구로부터도 친구로 선택받지 못한 것으로 나왔다. 일방적으로 친해지고 싶어할 뿐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드러난 것이다. 참여 학교의 교사들은 “교육부나 학교에서 실시해 온 기존 조사에선 왕따 학생을 가려내기 어려웠는데 교우 관계도를 보면 위험군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행되는 학교폭력 관련 조사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정서행동 특성검사 두 가지다. 이달 24일부터 교육부가 실시하는 2014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초 4~고 3 대상으로 연 2회 하는데, ‘학교폭력을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당했느냐’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도움이 됐느냐’ 등을 묻는 익명 조사다.

우울증이나 자살위험군 학생을 가려내는 정서행동 특성검사는 초 1·4, 중·고 1 대상으로 연 1회 실시하는데 ‘나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 ‘평소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등의 내용을 파악한다.

 김종호 건대부중 교사는 “학교에서도 교우 관계를 조사한 적이 있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적어내라고만 해 실제 쌍방향으로 교우 관계를 맺는지는 알 수 없었다”며 “교우 관계도를 보면 학생들끼리 얼마나 친밀한지, 다른 친구를 동경하기만 하는지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조사를 해본 서울의 한 중학교 이모(39) 교사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관계도 조사 결과에선 외톨이로 나와 놀랐다”며 “교우 관계를 잘 맺는 학생이 멘토로 나서 보살펴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제주 한 고교의 장모(45) 교사도 “학급에는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다른 반에는 있어 반을 옮겨준 학생이 있다”고 했다.

 송슬기 사이람 소셜네트워크사업팀장은 “기존 학교폭력 관련 설문조사는 학생들이 거짓으로 답하거나 스스로 괜찮다고 착각하는 답변을 할 소지가 있다”며 “하지만 학생들에게 익숙한 질문을 통해 친하거나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고르라고 한 뒤 교우 관계도를 그려보면 학교폭력이나 왕따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장 교수는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해선 학생 한 사람의 내면보다 관계망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며 “다만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조사 결과를 상담 교사에게만 공개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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