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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새 남북 방문 … '집 없는 억만장자' 베르그루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무소유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 좌선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배경 작품은 베르그루엔과 친한 일본 작가 히로시 스기모토의 ‘번개 치는 들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시청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에서 ‘세상에서 이렇게 신나는 일은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는 갈색머리 외국인을 보았다면, 그가 바로 ‘집 없는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51)이다.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온 20억 달러(약 2조1190억원)의 자산가 베르그루엔은 서울에서 지하철을 꼭 타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지하철은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그의 믿음 때문이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고 지하철을 타는 보통사람들이 그 사회의 본모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주 활동무대인 미국·유럽은 물론 3주 전 방문한 평양에서도 지하철을 탔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 중국 정치의 미래를 논하고 구글 에릭 슈밋 회장 등과 함께 미 캘리포니아주 재정파탄을 고민하는 그의 또 다른 면모다.

재산 20억 달러, 인류의 문제 고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좌파 재벌’ ‘무소유 억만장자’로 부르는 그를 기자가 한국 언론 최초로 인터뷰한 건 2011년 1월 25일. 당시 전화 통화에서 그는 “언젠가 서울에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국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투자로 자산을 불리고 굴리는 게 그의 특기라면 각 나라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공부하는 건 그의 목표다. 재산의 5%인 1억 달러를 들여 자신의 이름을 딴 싱크탱크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거버넌스(governance·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 연구소’를 설립했고, ‘유럽의 미래를 생각하는 위원회’ 등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엔 『21세기를 위한 지성적 거버넌스: 서양과 동양 사이의 중도의 길』을 펴냈고, 콧대 높은 FT는 이 책을 ‘2012년 읽어야 할 1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지난달 30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한국 일정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등 20여 명의 명사들과 대담을 나눴다. 방문한 장소도 광장시장부터 5성호텔, 삼성미술관 리움까지 다양하다.

 “대기업 사장처럼 지루해 보이긴 싫은데.” 지난 5일 아침, 삼성미술관 리움. 본지 사진기자 앞에서 포즈를 취한 그는 “나도 저렇게 쿨한 모자와 청바지 차림으로 찍고 싶다”며 너스레를 부렸다. 재벌처럼 보이기 싫다지만 그는 이미 세계적 재벌이다. 자산 목록은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와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 등을 거느린 미디어그룹 라 프리사 ▶자신의 이름을 딴 투자회사 베르그루엔 홀딩스 ▶버거킹 ▶독일 유명 백화점기업 칼슈타트 등 길기만 하다. 하지만 그는 은식기에 서빙되는 5성호텔 만찬보다 이태원의 소박한 빵집을 더 좋아하는 ‘반전 매력남’이다. 술은 일절 안 하고 마늘·양파가 들어간 음식은 자극적이란 이유로 입에 대지도 않는다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란 점만 빼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싱글남 중 하나’라는 표현이 과히 틀리지는 않다.

 서울에서도 그의 아이폰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그는 한때 자신이 ‘제국주의 언어’라 부르며 배우길 거부했던 영어뿐 아니라 모국어인 프랑스어·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 틈틈이 업무를 처리했다.

 독일계 유대인이었던 그의 아버지 하인츠 베르그루엔은 한때 언론계에 종사했다가 이후 미술거래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도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컸다”고 강조한다. 친구에게 빌린 2000달러를 종잣돈 삼아 투자에 성공했다는 것. 10대에 카를 마르크스에 심취했다는 그가 정작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재능을 꽃피운 셈이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아프리카(그의 다음 행선지 중 하나는 잠비아다)를 방문해 정치·경제 리더들을 만나고 학자들을 만나 공부를 하고 책을 쓰고 있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레이디 가가 등과 함께 파티를 벌였던 그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그는 심경의 변화마저도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들어 설명했다.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된 자산이다. 이왕이면 효율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고 싶다”는 것.

 자산관리 이외의 시간에도 그는 세계 석학들로부터 ‘과외’ 수업을 받고, 자신이 설립한 여러 위원회에서 인류의 앞날을 고민하기에 바쁘다. 대화에서 자신이 모르는 학자의 이름이 나오면 “누구인지 e메일로 알려달라”고 당부하곤 했다. 7일 박원순 시장, 건축가 승효상과는 ‘도시 재생’에 대해 얘기하는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또 토론했다. 어딜 가나 그의 손엔 펜과 수첩이 들려 있다.

 그런 그가 3주 전엔 평양을 방문했다. 다음 목표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냐고 묻자 신속하고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아니다.”

왜일까. “나의 일은 정부가 더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과 손잡고 협력해 나간다는 뜻이다. 북한의 경우처럼 정부 관계자들의 이해관계에 반(反)하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영역이 아니다.”

그의 눈으로 직접 본 평양은 어땠을까. 그는 우선 북한을 얕잡아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1953년 6·25 정전 이후) 60년 넘게 생존해온 체제다. 스스로 고립시켜 외딴 섬으로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것은 일종의 재능이다. 평양 거리의 시민들 눈엔 목적의식이 선명했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아니라 확고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여타 실패국가의 거리에선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시진핑은 겸손 리커창은 실용적

니콜라스 베르그루엔(가운데)을 만나는 자리엔 이승윤 본지 대학생 객원기자(영국 옥스퍼드대?오른쪽)와 다니엘 튜더 중앙SUNDAY 객원기자(왼쪽)도 함께 참석해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에 합류한 중앙SUNDAY 객원기자 다니엘 튜더가 북한체제가 무너질 것으로 보는지 묻자 베르그루엔은 “평양에 고작 며칠밖에 있지 않은 외부인인 내가 보는 건 한계가 있다”면서도 “현재 북한 사회는 효율적이진 않지만 나름대로 기능을 하고 있고, 그 체제 속 사람들은 그 환경에 적응을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중요한 건, 결국 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연결되는 상황에선 북한도 언젠가 개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개혁·개방의 방법과 전략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눈에 비친 서울과 평양은 어떨까. 그는 “놀라울 정도로 다르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닮았다”고 표현했다. “북한 체제가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버텨온 것과 한국이 오늘날 눈부신 정치·경제 발전을 이룬 데서 한민족의 공통점을 읽을 수 있다. 남북으로 분단은 됐지만 두 곳 사람들 모두 성실하고 목적의식이 뚜렷하며 절제력이 있다는 점이다.” 유교문화에도 주목했다. “북한은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왕조 같다. 유학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 하겠지만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희생과 절제를 중시하는 유교적 뿌리가 오늘날 북한 사회의 근간인 듯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조심스레 미국과 쿠바를 예로 들었다. “미국은 국내 정치 이해관계로 인해 60년대 이후 쿠바 봉쇄정책을 폈고, 이는 오히려 쿠바를 일종의 좌파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며 “중요한 건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견은 전적으로 외부인의 제3자적 견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보는 한국은 어떨까. 그는 책 『21세기를 위한 지성적 거버넌스: 서양과 동양 사이의 중도의 길』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를 잃고 ‘소비 민주주의’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그는 “미국적 소비지향 가치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은 나름의 영혼과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어졌다.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한국 국민은 자유와 기회를 누린다. 하지만 모든 동전엔 양면이 있듯, 거기엔 책임도 따른다. 민주주의는 대가가 따르는 제도다. 권위주의 체제하에 경제발전이 가속화됐던 데는 이유가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란 없다. 선거 결과엔 승복해야 하고 대신 비판엔 귀를 열어야 한다.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는 다르다. 한국인들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은 정부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튜더가 한국의 재벌에 대해 묻자 그는 “재벌에 대한 비판은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특혜를 받고 고속 성장한 시기를 지난 지금에도 재벌이 잘나가고 있는 건 스스로 계속 ‘업데이트’해온 덕이다. 이런 노력이 성공했다는 비범함을 높이 산다”고 했다.

 그가 요즘 큰 관심을 두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는 “리더십이 실종된 시대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만큼은 나름의 체제를 공고히 유지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만남은 이렇게 회고했다. “시 국가주석은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태도로 명석함을 보였고 리 총리는 실용적 접근법을 가진 사람이었다. ‘목표를 한번 정하면 이뤄낼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리 총리에 대해 베르그루엔은 “리 총리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중국이 매년 10% 성장률을 기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이제 경제적 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후엔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다른 보상을 받기를 원할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요즘 그의 업무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언론이다. 내년 1월엔 유력 진보 언론인 허핑턴포스트와 손잡고 새로운 온라인매체인 ‘월드 포스트’를 공식 출범시킨다. 4일 오전 JTBC 스튜디오에서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을 만나 뉴스9(6일 방송분)을 녹화하면서 “한국 최고의 앵커를 만나 영광”이라는 말을 건네며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그도 서울에서 하지 못한 게 있다. 본지 취재진에게 점심을 사는 일이었다. FT의 유명 코너인 ‘FT와의 점심(Lunch with the FT)’에서도 고집을 부려 자신이 돈을 낸 베르그루엔이다. 2011년 통화에서 “서울에 오면 중앙일보가 점심을 내겠다”고 했을 때도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5일 점심에서 디저트가 나오자 슬쩍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손에 쥐기에 재빨리 먼저 계산을 하고 돌아왔더니 “어떻게 이럴 수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 그였다. 다음 날 그는 귀여운 복수를 했다. 취재진 일행들에게 곰 인형을 하나씩 선물한 것. 베르그루엔 본인도 연분홍 곰 인형을 사고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51세가 아니라 5세 같은 천진난만하고 호기심 많은 억만장자다웠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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