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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대학 장비로 원격 실험하는 미국 … 과학교실 몇 개인지도 파악 못한 한국

지난달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턴타운십하이스쿨 11학년(한국의 고2) 학생들이 진자의 운동주기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시카고=김한별 기자]
‘낡은 학교버스를 바꾸려 한다. 총 예산은 12년(버스 운행 수명)간 6000만 달러(약 638억원)다. 35제곱마일(약 90㎢) 내에 사는 학생 6500명이 비좁지 않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고장에 대비해 예비 차량도 있어야 한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려면 디젤·하이브리드·액화천연가스(CNG)·수소연료전지(HFC) 네 종류의 버스 가운데 어떤 종류를 얼마나 사야 할까. 여러 종류를 섞어 사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 결과는 구두로 발표하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사용한 수학 모델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각 버스의 대당 가격과 마일당 유지비, 좌석 수, 마일당 배기가스 배출량은 다음과 같다….’

 미국 시카고 교외의 작은 마을인 에반스턴. 이곳 공립학교(에반스턴타운십하이스쿨, ETHS) 물리학 수업 시간에 최근 학생들에게 주어진 연구 과제다. 단순한 물리 문제라기보다 경제학·환경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과제다.

 답이 뭘까. 지난달 14일 학교에서 만난 담당교사 마크 본드라섹은 “정답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 스스로 실생활의 문제(real world problem)를 고민하도록 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박사 출신 교사가 프로그램 개발

인터넷을 이용해 원격으로 방사선량 측정 실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iLAB) 화면 모습. [시카고=김한별 기자]
본드라섹은 박사 출신 교사다. 일리노이대에서 고에너지 입자물리학으로 학위를 받았 다. 그는 인근 노스웨스턴 대학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이 같은 수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본드라섹의 수업 중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 방사능 실험도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지역 주민의 방사선 피폭을 막기 위해 대피령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사고 원전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야 안전할까 궁금해했다. 본드라섹은 학생들에게 각자 예상 모델을 만든 뒤, 거리에 따른 방사선량 변화를 연구하도록 했다. 위험한 사고 현장에 직접 가는 대신 1990년대 MIT가 개발한 온라인 실험 프로그램(iLAB)을 이용했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교실에서 1만4000여㎞ 떨어진 호주 퀸즐랜드 대학 실험실에 있는 방사성 원소와 가이거 계측기로 실험을 했다. 학생들은 인터넷으로 장비 조작 명령을 내리고, 웹캠을 이용해 실제 장비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본드라섹의 수업 방식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물리·화학 통합과목 수강생 맥스 골드스미스(11학년)는 “실험을 통해 개념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생활 속 과학 원리, 스스로 찾게


 미 국립연구위원회(NRC)는 올해 발표한 과학교육 혁신안(차세대과학표준, NGSS)을 통해 이 같은 교육 방식을 적극 권장했다. 과학자·공학자들이 평소 실제 연구하는 방식(Scientific & Engineering Practice)처럼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본드라섹과 함께 수업 프로그램을 개발한 노스웨스턴대 STEM교육파트너십연구소(OSEP) 책임자 케미 조나 박사는 “같은 내용을 배워도 실제 실험을 해봤을 때 학생들의 이해도가 높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현실은 이와 딴판이다. 2007년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한다며 2012년까지 모든 초·중·고교에 현대화된 실험실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며 한곳에서 수업·실험이 모두 가능한 과학교실을 확보하는 사업으로 대체됐다. 이를 통해 2009년과 2010년 각각 99곳, 26곳의 수학과학특화형(B-1형) 교과교실이 마련됐다. 하지만 2011년부터 교과교실 과목 선택이 학교 자율에 맡겨지면서 이마저 흐지부지됐다.

 과학교과교실제 설계·평가에 참여했던 경상대 손정우(물리교육) 교수는 “정부가 과학교실 운영을 직접 챙기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학교가 다시 예전 입시교육으로 되돌아갔다”며 “현재 과학교실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곳은 과학중점학교 등 130여 곳(전체 초·중·고교는 1만1300여 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몇 개 학교가 과학교과교실을 운영하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 성적과 흥미 큰 차이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학생들의 과학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과학을 좋아하거나 졸업 후 과학자가 되겠다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1년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 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학교 2학년생의 과학 성적은 세계 3위였지만 ‘과학에 자신 있다’는 4%(국제평균 20%), ‘과학을 좋아한다’는 11%(국제평균 35%)에 불과했다.

◆특별취재팀=이상언 특파원(영국 런던), 김한별(미국 시카고)·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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