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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잣집 아들과 로맨스? '욕하면서 부러운' 이중성

KBS ‘비밀’. 냉소적인 재벌2세 지성(왼쪽)은 자신의 연인을 교통사고로 죽게 한 황정음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다가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사진 KBS]

최근 새로 시작한 수목드라마 KBS ‘비밀’과 SBS ‘상속자들’. 공통점은 부유한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로맨스다. 가난한 여자(황정음)와 재벌남(지성)이 치명적 사랑에 빠지거나(‘비밀’), 정략결혼이 예정된 재벌남(이민호)이 아르바이트생(박신혜)에게 마음을 빼앗기는(‘상속자들’) 이야기다. 이달 초 끝난 SBS ‘주군의 태양’과 로맨스의 기본 구도가 같다. 특히 ‘시크릿 가든’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은 ‘가난 상속자’인 여주인공 박신혜를 빼고 나면 주요 배역들이 왕족같은 상속자들이다. 그것도 모두 ‘제국고’에 다니는 10대들이라 제 2의 ‘꽃보다 남자’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달 중순 막을 내린 SBS ‘황금의 제국’(SBS)은 대기업 내부 가족들간의 권력다툼에 집중했다. 한국 드라마는 왜 이렇게 재벌을 즐겨 다루는 것일까. 페이스북 ‘드라마의 모든 것’ 팀이 진행하는 드라마 썰전(舌戰) 11번째 주제다.

암투 아니면 3각4각 로맨스 양대 구도

SBS ‘상속자들’은 가난한 여주인공을 빼고나면 10대인 주인공들 모두가 엄청난 부잣집 자제들로 나온다. 배다른 재벌 형제의 갈등을 보여주는 이민호(오른쪽)와 최진혁. [사진 SBS 콘텐츠허브]
 ◆드라마와 재력가=한국 드라마에 대기업이 등장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마이더스’ ‘황금의 제국’ ‘로얄 패밀리’ 등 재력가들을 주인공으로 욕망과 권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그린다. 다른 하나는 부잣집 아들과 평범한 여성의 조합이라는 로맨스물이다. ‘꽃보다 남자’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발리에서 생긴 일’ ‘보스를 지켜라’ 등이다.

 “미국 드라마 ‘달라스’류의 비극적 정서를 지닌 재벌드라마와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성)·캔디 구도의 신데렐라 로맨틱 코미디라는 양대 산맥이다. 전자에는 재벌가의 암투와 치정, 후자에는 3~4각 로맨스와 ‘프리티 우먼’식 판타지가 주축을 이루는”(홍석경 서울대 교수) 양상이다. 임영호 부산대 교수는 “낭만성을 유보하고 사회성을 전면에 부각한 유형(‘황금의 제국’)과 낭만성을 전면에 놓고 사회성을 배경에 깐 유형”으로 나눴다.

 ◆신데렐라 스토리=유독 한국 드라마에 많은 장르다. 아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대표되는, 철없는 부잣집 아들이 평범녀를 만나 건실한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스토리가 공식처럼 있을 정도다.”(김주옥 문화평론가) 공황장애를 앓거나 트라우마(상처)가 있는 신경쇠약 재벌남들은 이 여주인공에 의해 치유되고 성장한다.

 “실제 복잡한 도시환경에서 재벌과 일반인의 만남 같은 극적 상황은 드물다. 재벌로맨스란, 서구에선 20세기 초에 거의 끝난 이야기다. 유럽, 특히 프랑스 드라마에선 대기업가·엘리트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다.”(홍석경). 미국 드라마 역시 범죄수사물이 주종을 이룬다. 일본도 ‘꽃보다 남자’처럼 소녀만화적 소재로 존재할 뿐, 정작 대기업집단이 나오는 드라마는 찾기 어렵다. 생활밀착형이거나 미스터리가 대부분이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재벌남은 극중 ‘사랑의 낭만성’을 위한 중요한 설정이라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사랑에서 낭만성은 자본과 연결돼 있다. 평범한 분식점 아닌 낯선 장소(비싼 곳), 낯선 물건(PPL)들이 사랑의 낭만성을 증명하는 장치”다. 극중 인물로 부자들이 나올수록 이런 장치를 더 다양하게 펼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사회의 이중성=한국 드라마에 유독 많은 재벌 이야기는 우리의 계층갈등이나 속물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사회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 크고, 계층불만과 신분상승 욕구가 강하다. 이것이 증오이든 동경이든 부자들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진다. 부자의 세계를 우리와 상관없는 별세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임영호).

 박지영 서울대 박사는 “2000년대 들어 재벌에 대한 비판과 동경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속물에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진단했다. 임영호 교수는 “재벌 소재가 대중성을 띠는 이유는, 겉으로는 재벌의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닮고 싶어하는 우리 안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난봉꾼 류의 부정적 이미지 부드러워져

 ‘황금의 제국’에서 재벌가 사람들은 불행하고, 신분상승을 욕망했던 가난한 청년 고수는 파멸했다. 허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이 드라마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이 궁전으로 들어가면 모욕감과 싸워야 한다는 논조가 강했다. 고착화된 계층구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반영됐다”고 평했다.

 ◆부드러운 왕자님이 대세=예전에는 재벌 하면 졸부나 난봉꾼, 7공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으나 요즘에는 ‘부드러운 왕자님’ 이미지가 전면에 노출된다. ‘부자 되세요’라는 CF가 나오면서 부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폭발한 2000년대 초반 이후 두드러진 변화다. 또 이제 재벌남은 “경제자본뿐 아니라 문화자본까지 갖춰 예전처럼 돈만 많고 천박한 인간이 아니”(임영호)라는 점도 있다.

 평범한 여성의 연적으로 재벌 여성(조연)이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재벌남은 가난한 여주인공의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동아줄이다. 원하는 남자를 평범녀에게 빼앗기는 재벌 여성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김주옥)는 분석이다. 동경하면서도 경원하는, 재벌에 대한 대중의 양가적 감정이 극적 구조에 반영된 셈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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