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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조각품부터 심리적 드로잉까지,실험작 파노라마

(위)작가들을 위한 게스트룸에 선 루디 아킬리. 뒤에 걸려있는 것은 망구 푸트라의 작품이다.(아래) 아킬리 미술관 야경
21세기 들어 현대미술의 지평은 글로벌한 반경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특히 아시아 현대미술을 얘기할 때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최근 5~6년간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대대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미술이다. 과거 350여 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1602~1942)였던 인도네시아는 100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문화국가다.
모두 30대인 크리스틴 아이 추(Christine Ay Tjoe),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아구스 수아게(Agus Suage)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 하나가 1억원대가 넘는 기록들을 만들면서 미술시장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새로운 미술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2010년 족자카르타(Yoggakarta)에서 처음으로 ‘족자 비엔날레’가 시작됐고, 반둥(Bandung) 지역에는 많은 작가의 스튜디오가 매우 활발하게 들어서고 있다. 아시아 현대미술을 얘기할 때 반드시 방문해야 할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인도네시아 미술이 급작스럽게 부상하기까지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후원하고 함께 즐기고 있는 컬렉터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자신의 컬렉션으로 거대한 미술관을 만들고 실험적인 작가들을 후원해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서포터로 불리는 루디 아킬리(65)다. 지난달 29일 자카르타 그의 자택에서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흰색 마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멋진 백발의 그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가 “한국 언론과는 처음 하는 인터뷰”라며 “인도네시아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찾아와줘 감사드린다”고 조금은 수줍은 모습으로 필자를 반겼다. 매우 웅장한 콜로니얼 스타일의 집은 그가 1995년부터 5년에 걸쳐 만들어 온 저택이었다.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다양한 장식미술품과 골동품으로 가득한 호기심 박스(curiosity of cabinet)라고나 할까?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인도네시아 작가 스리하디 소에다르소노가 특별히 이 집을 위해 그렸다는 회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06년 자신의 저택 옆에 미술관을 개관했다. 1990년대부터 10여 년간 모은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서다. 미술관은 제프리 부디만이라는 젊은 건축가가 만든 모던한 젠 스타일의 4층 건물. 아킬리는 미술관과 연결되는 아름다운 오솔길을 보여주며 “물론 정문이 있지만 나는 작품을 자주 보고 싶기 때문에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우리 집 뒷문에서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작은 길을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1 아킬리가 로날드 벤트라의 작품 ‘인간 스터디’를 설명하고 있다.2 미술관 1층 모습. 가운데 있는 작품은 에디 프라반도노의 ‘Go go Green’.
“여러 문화가 섞인 인도네시아 미술의 가능성 무한대”
처음 들어간 공간부터 매우 실험적인 작품들이 있었다. 에코 누그로호의 키치적 조각작품부터 필리핀 작가인 호세 레가스피(Jose Legaspi)의 심리적 드로잉 등까지, 어떻게 보면 웬만한 사람은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첫 인상을 강렬하게 심었다. 2층에는 비디오, 조각 등의 설치작품들이다. 중요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을 일찌감치 컬렉션해 놓았기에 늘 다른 미술관에서 전시 요청이 들어오면 대여해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인도네시아 미술에 아주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좀페트 쿠스위다난토(Jompet Kuswidananto)의 ‘제3의 영역(Third Realm)’이라는 작품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의 성격은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진 것 같다. 이러한 설치작품이 한 장의 회화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작품은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 하는 듯하다. 변화하는 사회와 정치적 환경에 대한 그들의 매우 과감하고 창의적인 표현이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3 에코 누구로호의 ‘좋은 시절(Golden Years)’.4 좀펫 쿠스위다난토의 ‘세 번째 영역(Third Realm)’.5 루디 아킬리씨의 자택 라운지 전경. 다양한 가구와 작품이 함께 놓여있다.
망구 푸트라(Mangu Putra)의 ‘독립기념일’이라는 작품을 보면서는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국회에 있어야 할 것”이라며 “독립을 했음에도 아직도 가난한 인도네시아를 생각하며 동시에 아이들이 힘 있게 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저택과 미술관을 돌아보며 수집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유럽의 건축과 미술사, 장식사에도 해박한 식견을 피력한 덕분에 약 3시간에 걸친 인터뷰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부동산업, 여행업, 요식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 사업들이 컬렉션을 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나는 1970년대부터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나를 미술의 세계로 들어오게 한 것 같다. 하지만 미술은 언제나 바라보는 대상이었지 내가 직접 그 작품들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을 그전까지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럼 언제부터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나.
“90년대 후반부터 미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고,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컬렉션은 모던 인도네시아, 중국 거장들의 회화에서 시작해 매우 실험적인 현대미술 설치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20년간 수백 점의 작품을 모으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나는 한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깊이 빠져드는 성격이다. 아트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고, 미술세계 사람들을 알게 되고 또 작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아트에 심취하게 된 것 같다. 처음엔 중국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주더췬(朱德郡), 자오우지(趙無極), 우관중(吳冠中) 같은 작가나 인도네시아의 모던 마스터인 헨드라 구나완(Hendra Gunawan), 스리하디 소에다르소노(Srihadi Soredarsono) 등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내가 이해하기 쉬운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했던 것 같다.”

-하지만 2006년 개관한 아킬리 미술관에서는 아마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어떻게 보면 요즘 비엔날레나 가야 볼 수 있을 정도의 매우 현대적인 작가들의 설치미술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 현대미술은 지금 내가 가장 집중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나는 그들이 앞으로 인도네시아의 미술사에서 볼 수 있는 중요 작가들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술은 단지 아름답고 테크닉이 뛰어난 작품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미술을 통해 그 사회를 어떻게 표현하고 그 사회와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실험적인 작품을 컬렉션하는 것이 작가들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봐준다면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단지 작가들을 돕고 지원하겠다는 마음에서만 이 실험적인 작품들을 산 것은 아니다. 누구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작가들을 만나면서 작품에 대해 알게 되어가는 것이 정말 놀랍고 새롭다. 미술이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다양한 맥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예술이다.”

-2006년 개관한 아킬리 미술관은 왜 설립했나.
“내가 모으기 시작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 작품들을 우리 가족만 누리기에는 작가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미술을 즐기는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 오픈하고 보니 아직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부터 시작한 인도네시아 작가상은 어떤 프로그램인가.
“인도네시아 작가들은 매우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아시아 작가가 그렇듯 아직 국제적으로 덜 소개된 것 같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상을 만들어 그중 상을 받은 학생을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 전액 장학금으로 유학을 보내주고 있다.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런 상이 많이 있나?
“예전에는 국립미술관과 필립 모리스사가 시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프로그램이 다 없어지고 이것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셋째 아들은 가장 실험적인 현대미술 갤러리(아크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아들에게 미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어 이런 일을 하게 되었나.
“아니다. 아들이 오히려 내게 영향을 주어 내가 현대미술을 알게 됐다. 아들은 발리에 ‘포테이토 헤드’라는 매우 흥미로운 식당을 운영하며 현대미술 작가를 지원하는 상업화랑을 운영한다. 상업화랑이라기보다 매우 대안적인 상업화랑을 추구하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실험적인 전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허허) 다행히도, 아들은 나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옛 거장들의 작품에는 인도네시아 전통성에 기인한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현대미술은 다소 변화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매우 새로운 ‘아이디어’에 집중된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젊은 작가들이 나이 들면 그들이 시작한 이러한 새로운 시각언어로 인도네시아의 전통을 이어가는 더 좋은 미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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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