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우리안의 ‘그렌펠 타워’

Series1 큰 불 나는 건물은 따로 있다

Intro

2017.6.14 Am 1:15
영국 런던

지난 6월 14일 새벽 1시(현지 시간) 영국 런던 서부의 24층 임대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화재가 났다. 4층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뒤덮었고 잠자던 주민 80여명이 사망했다.

2015.1.10 Am 9:00
한국 의정부

2년 전인 2015년 1월 10일 토요일 오전 9시. 경기도 의정부 D아파트(공동주택) 1층 주차장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건물을 휘감고 옆 동으로 옮겨 붙었고 5명의 사망자, 130 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빈센트 디조르지오 빈센트 디조르지오
삼성화재 재난방재연구소장

대부분의 대형 화재 사고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우선 건축에 쓰인 외장재가 가연성 소재로 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불이 나기 쉽고, 주위로 번지기 쉽다는 걸 의미한다. 또 하나는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것이다. 스프링클러는 발생 초기 화재를 감지하고 진화하는 자동소화설비다. 피해 규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불에 잘 타는 건축 자재를 쓰고 스프링클러가 없는 건물은 한마디로 화재에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hapter 1

‘가연성 외벽’ 4만여채

그렌펠 타워가 50분만에 몽땅 타버린 건 외장재 탓이었다. 알루미늄 사이에 가연성 폴리에틸렌(플라스틱의 일종)을 넣어 불이 쉽게 옮겨 붙었다. 외벽 사이 빈 공간은 불길이 위로 치솟을 수 있게 돕는 ‘굴뚝’ 역할을 했다.

외벽의 ‘굴뚝효과’와 ‘가연성’ 외장재

건물 외벽의 굴뚝효과

이런 사정은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연성 외장재 사용을 규제하는 법규가 마련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서도 외벽에 가연성 드라이비트가 쓰였다.

건축법상 건축 마감재는 불에 타는 성질에 따라 총 4가지로 나뉜다. 불연재(난연1등급), 준불연재(난연2등급), 난연재(난연3등급)와 '등급 외'다. 국내에선 불에 강한 불연 · 준불연재 보다, 가격이 싸고 무게가 가벼운 '등급 외' 외장재(스티로폼·우레탄 등)를 많이 써왔다. 현재 건축용 단열재 시장 전체(2조5000억 원 규모) 가운데 가연성 제품 매출이 90% 가량이다.


민세홍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강남 역삼동 일대 769채 건물 중 드라이비트, 메탈판넬 등 화재에 취약한 외장재를 쓴 곳이 전체 33%(256채)나 된다. *주) ‘외단열시스템 외장재로 시공된 다세대 공동주택의 화재 위험에 관한 연구’(2013)


소방관들도 소방활동시 가장 위험한 구조로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한 ‘샌드위치 패널’을 꼽는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소방공무원 1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주) '화재취약지구의 화재안전성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방재학회논문집』, 제15권 5호, 2015.10

중앙일보는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책임교수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서울시내 건물 가운데 가연성 외장재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건물 전수(全數)를 뽑아봤다. 국내 건축물 대장에는 외장재 관련 데이터가 없어, 외장재 관련 법규가 만들어지기 전 지어진 건물이나 법규의 규제를 받지 않은 건물을 잠재적 대상으로 봤다. 2011년 12월까지 지어진 30층 미만 건물, 2015년 12월까지 지어진 6층 이상~30층 미만 건물이다. 건축허가 시기와 실제 완공시기의 차이를 고려해 대상을 선정했다. 데이터 추출·분석은 오픈 데이터 운동을 펼치는 '코드 나무'의 도움을 받았다.

서울의 잠재적 외장재 취약건물

외장재 취약건물과 해당 건물이 위치한 대지를 함께 표시

분석 결과 잠재적으로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건물이 서울시에만 4만 7021채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전체 건물의 7.46%에 해당하는 수치다. 위 지도는 잠재적 위험 건물과 건물이 입지한 토지를 표시한 것이다.

구별로는 강남구에 화재에 취약한 마감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건물이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5214채). 이어 강서구(3289채), 서초구(3226채), 송파구(2745채) 순이었다. 상위 10개 구는 아래표와 같다.

Chapter 2

‘NO 스프링클러’ 3만여채

런던 그렌펠 타워와 의정부 아파트 화재의 두 번째 공통점은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이다. 의정부 화재의 경우 불에 탄 건물 3동 중 한 동에만 스프링클러가 있었다.

스프링클러는 소방대가 도착할 때까지 화재 확산을 막아준다. 때문에 스프링클러 유무에 따라 피해 정도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스프링클러 설치유무에 따른 재산 피해

스프링클러 설치유무에 따른 재산 피해 자료: FM Global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1년~2015년간 발생한 건축물 화재 24만 8524건 가운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가 24만 3835건에 달했다(98.1%).

미국방화협회(NEPA)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건물에서 불이 나면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95%"라고 밝혔다.

세계최대 보험사 중 하나인 FM글로벌도 보고서를 통해 "스프링클러가 한 개만 있어도 25%의 화재를 진압할 수 있고, 3개 이하면 50%, 9개 이하면 75%의 화재를 진압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장재와 마찬가지로 스프링클러 관련 국내 법규가 마련된 지는 얼마 안됐다.

구체적으로 1992년 이전에 지어진 모든 건물, 1992년~2005년 사이에 지어진 15층 이하 건물, 2005년 이후 지어진 10층 이하 건물은 법규상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다중이용시설물, 연면적이 넓은 건물 등 스프링클러 필수설치 건물 제외).

소방방재전문가들은 "해당 건물의 99%이상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중앙일보는 '코드나무'와 함께 서울시 건물 가운데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 되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을 전수 조사했다.

서울의 잠재적 스프링클러 취약건물

스프링클러 취약건물과 해당 건물이 위치한 대지를 함께 표시

그 결과 총 3만 8227채 건물이 스프링클러가 없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전체 건물의 6.06%에 해당하는 수치다. 위 지도는 잠재적 위험 건물과 건물이 입지한 토지를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구별로 확인할 경우 강남구가 4576채 건물이 취약한 마감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서초구(2767채)ㆍ강서구(2571채)ㆍ송파구(2205채) 순이었다. 상위 10개 구는 아래표와 같다.

Chapter 3

화재안전 ‘불량’ 901채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물의 소유자나 관리자는 건물 사용승인 후 10년이 지나면 2년마다 대지·건물의 구조, 화재안전, 건축설비 등을 점검해 허가권자(지방자치단체)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바닥면적 5000㎡ 이상 건축물 혹은 16층 이상 건축물이 대상이다.

이 같은 건축물 유지관리점검 항목 가운데는 화재안전 관련 11개 항목(외벽마감재료, 방화벽, 방화구획 등)도 포함돼 있다. 각 항목은 점검결과에 따라 4점(양호), 3점(보통), 2점(불량), 1점(매우불량)의 점수를 매긴다.

중앙일보는 코드나무와 함께 이 항목 평균점수가 3점 미만(불량, 매우불량)을 받은 건물을 전수 조사했다. 화재안전점수 평균이 3점 미만이라는 것은 당장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당장 안전조치 필요한 건물

지도상 표시된 건물은 안전등급 3점 미만 건물

조사 결과 서울 시내 건물 중 총 901채가 안전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건물중 0.14%에 해당하는 수치로, 위 지도는 해당 건물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구별로 확인할 경우 구로구와 금천구의 화재안전 점수 3점 미만 건물이 102채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송파구(87채), 광진구(68채), 서초구(57채) 순이었다. 상위 10개 구는 아래표와 같다.

Chapter 4

서울의 ‘그렌펠 타워’

서울의 잠재적 ‘그렌펠 타워’

대형 화재 위험 건물과 해당 건물이 위치한 대지를 함께 표시

그렌펠 타워 화재가 발생한지 약 두 달. 영국에서는 그렌펠과 같은 가연성 외장재를 쓴 건물을 전수 조사하는 등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우리는 어떨까. 위 지도는 앞서 살펴본 불에 잘타는 외장재를 썼을 가능성이 높은 건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화재안전 점수가 낮아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건물의 데이터를 서울시 지도 위에 겹쳐 놓은 것이다. 지도 위에 겹쳐 보이는 3만6802개의 점들이 우리의 잠재적 ‘그렌펠 타워’들이다.

다음 회에서는 화재시 소방활동의 핵심인 ‘도로’에 대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서울 화재위험 지도 인터렉티브 링크 우리 안의 ‘그렌펠 타워’ 서울, 그곳이 불안하다

발행일 : 2017.08.10

  • 기획 정원엽, 코드나무 김승범
  • 데이터 분석 및 지도 시각화 코드나무 김승범
  • 개발 전기환, 김승섭, 원나연
  • 3D 심정보
  • 디자인 임해든, 김현서
  • 영상편집 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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